#16 ‘흑인 모제스 할머니’라고 불리는 클레멘타인 헌터

 

흑인 모제스 할멈으로 불리는 클레멘타인 헌터

클레멘타인 헌터(Clementine Hunter 1886-1988)는 1886년 12월 루이지애나 주 나치트체스 인근 ‘히든힐 농장'(현재는 리틀에바 농장)에서 일곱 남매 중 최초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 메리 앙투아네트 애덤스는 버지니아에서 루이지애나로 끌려온 노예의 딸이며 아버지 존 루벤은 아일랜드인 아버지와 미국 원주민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당시 많은 흑인 소녀가 그랬듯이 클레멘타인 헌터 역시 읽고 쓰는 법을 배우지 않았다. 10살 되던 해, 그녀는 가혹한 히든 힐을 떠났다”존 로즈(Melrose)농장”에 이동해 1988년에 101세로 인생을 마감까지 그곳에서 여생을 보냈다. 멜로즈(Melrose)는 1790년대 해방된 콩고의 여인 마리 테레제와 그의 아들 아우구스틴 메토이아가 지은 면농장이었다.

그가 처음 붓을 든 것은 50대였다. 그는 자신의 마을을 방문한 예술가가 남긴 붓으로 미술 활동을 시작했고, 누구에게서 미술을 배우지 않고 독학으로 창작을 계속했다. 그는 자신이 평생을 살았던 목화농장의 기억을 바탕으로 그림을 그렸는데 남긴 작품 수는 4~5천여 점에 이른다.

클레멘타인 헌터 Pic king Cotton, c. 1950년대 oilon boarde 20 x 24 in. (50.8 x 61.0 cm.)

노을 지는 시간에 많은 사람들이 솜을 따고 있다. 누구나 다 아는 일이겠지만 그들은 흑인이다. 1950년대까지 미국 남부에 살던 흑인들은 주로 목화농장에서 저임금 노동을 하며 살았다. 이들이 하루 평균적으로 수확한 면화는 약 30kg이었다고 한다.

헌터는 주전자, 병, 종이 상자 등 버려진 물건을 주웠고 주로 그림을 그렸다. 아마도 재료를 구입할 수 있는 조건이 부족했을 것이다. 또 그가 그린 그림에 누빔 이불을 쓰기도 했다. 다행히 그는 첫 그림은 25센트 정도에 팔리고 시간이 지나면 동네 상점에 전시를 해 1달러에도 팔리는 행운을 잡는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얘기 같지 않니? 75세 때 미술을 시작해 죽는 날까지 그림을 그려 유명해진 미국 국민화가 ‘그랜드 마모지스(Grandma Moses)’의 이야기와 비슷하다. 그래서 헌터의 또 다른 별명은 흑인 모세스 할머니다. 그러나 헌터의 작품이 비록 1달러에 팔린다고 해도 모든 작품이 인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1940년대 헌터는 자신의 그림을 4분의 1가량 팔 수 있었고 1970년대에는 백달러에 팔 수 있었고 그녀가 죽을 무렵 딜러들에 의해 몇 천달러에 팔렸다.

헌터의 작품 중 가장 잘 알려진 것 중 하나는 벽화다. 이 벽화는 헌터가 살던 멜로즈 농장의 아프리카 하우스라는 식품저장 건물에 있다. 일일이 살펴보면 세탁하는 사람들, 솜옷, 놀고 있는 아이들 등 마을 사람들을 헌터만의 방법으로 순수하게 기록해 놓았다.

클레멘타인 헌터 벽화 / Afric an House , Melrose Plantation , 2010 . All murals by Clementine Hunter , 1955 , oil on wood . Loaned by Association for the Preservation of Historic Natchitoches .

클레멘타인 헌터 장례 행렬 1970 Gilly’s Gallery

사람들이 줄지어 꽃을 들고 다닌다. 아마 오늘은 누군가가 더 이상 땅을 밟지 않고 날기 시작하는 날일 것이다. 누가 삶을 마감했을까. 그것이 누구라도 좋아하는 사람을 배웅하는 것은 마음 아프다. 그림 오른쪽 아래에는 곧 떠난 사람이 잠든 흙침대가 만들어져 있다. 땅에도 사계절이 있을 테니 이 세계를 함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클레멘타인 헌터의 모습 ↗ 64 PARISHES

클레멘타인 헌터의 그림

결혼 1970

솜을 따는 사람들 1970

세탁의 날 1950년대

세탁의 날 1965 많은 백성 속예술가나 아웃사이더 아티스트와 마찬가지로 헌터도 독학으로 미술을 배웠기 때문에 같은 장면을 반복해 그렸다. 그녀의 작품은 대략 다섯 개의 주제로 나뉜다. 농장 생활, 마을 축제, 종교적 행사, 꽃과 새, 추상화들이 그 예다. 하지만 모든 그림의 색채가 밝고 헌터 특유의 유머러스함이 담긴 것이 그의 그림이 지닌 독창성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제 클레멘타인 헌터는 루이지애나에서 가장 유명한 민속예술가로 불린다(folkartist). 헌터는 뉴올리언스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개최한 최초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아티스트가 됐다. 또한 그의 작품은 동네 상점이 아니라 스미스소니언, 뉴올리언스, 애틀랜타 하이 박물관, 댈러스 미술관, 시카고 오프라 윈프리 컬렉션 등이 소장돼 있다.
모든 예술가에게는 시대의 각인이 남아 있다. 1900년대 내내 미국에서 흑인으로 살아온 헌터의 그림에는 그 시기 흑인들이 겪었던 노동의 고난과 고단한 삶 속에서도 서로를 의지하며 지내온 온정이 담겨 있다. 그래서인지 힘든 날도, 힘겨운 날도 혼자 있는 사람보다는 여럿이 함께 있는 구성이 많다. 1인 가구가 늘면서 아파트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관심 없는 차가운 도시 사람들에게 그의 그림은 따뜻한 그리움과 휴머니즘을 가져다준다.

좌: 춤추는 날 1960년대 – 우: 야외에서의 요리 1980, oil on board

*이 투고를 YMCA 월간지 <파랑 연>에 기고한 글에서 실제로 편집되어 나오는 잡지는 위와 다를 수 있습니다.기관에 기고한 원고이기 때문에, 가지고 돌아가는 경우는 출처를 반드시 남겨 주시고, 복제를 금지합니다.

©문·이소연 아트 메신저 빅소 <모세스 할머니 평범한 삶의 행복을 그리다> <출근길 명화 한 점> <그림은 위안이다> <나를 행복하게 하는 그림> 저자 소통 그림연구소, 빅피쉬아트, 즐거운 미술관 대표